1. 서론: '뉴 노멀(New Normal)'이 된 고환율 시대와 1,480원의 경고
2025년 12월, 대한민국 외환시장은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이자 기술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480원 선을 돌파하며 약 2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단순한 일시적 변동성을 넘어선 구조적 변화를 시사한다. 과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환율 급등이 급격한 외화 유동성 경색과 대외 채무 불이행 우려에 기인했다면, 2025년 말의 원화 약세는 펀더멘털의 변화, 자본 수지의 구조적 적자 고착화,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본 보고서는 미국 등 주요 해외 언론과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분석한 대한민국 원화 가치 하락의 원인과 2026년 전망을 15,000단어 분량으로 방대하게 집대성하여 분석한다. Bank of America, JP Morgan, Goldman Sachs, Citi, IMF 등 세계 금융 시장을 주도하는 기관들의 보고서와 분석을 토대로, 현재의 원화 약세가 일시적인 '오버슈팅'인지, 아니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쇠퇴를 반영한 '뉴 노멀'인지를 심층적으로 규명한다. 특히 '서학개미'로 대변되는 가계 자본의 대이동, 반도체 사이클의 양극화, 그리고 2024년 12월 계엄령 사태 이후 지속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환율 결정 메커니즘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해외의 시각을 빌어 냉철하게 진단한다.
2. 현재 외환 시장의 현황과 특이점: 탈동조화(Decoupling)와 변동성
2.1. 1,480원 돌파의 시장 역학
2025년 12우러 중순, 원화 가치는 달러당 1,480원에 근접하거나 이를 일시적으로 상회하며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달러 강세에 따는 수동적 약세로 치부하기 어렵다. 같은 기간 글로벌 달러 인덱스(DXY)는 10월 중순 수준인 98.40대로 하락 안정화되는 추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원화는 이러한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에서 소외되며 독자적인 약세 흐름을 지속했기 떄문이다.
해외 언론과 분석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탈동조화(Decoupling)'라고 명명하며, 원화가 더 이상 글로벌 위험 선호 심리나 달러 약세의 수혜를 입지 못하는 통화가 되었음을 경고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tered) 등 주요 금융기관은 원화가 글로벌 달러 트렌드와 괴리되어 움직이는 현상은 원화의 가치가 대외 변수보다 국내 자본 유출입과 같은 내부 요인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2.2. 실질실효환율(NEER)의 추락
원화 약세의 심각성은 양자 환율(USD/KRW)뿐만 아니라, 주요 교역국 통화 대비 원화의 종합적 가치를 나타내는 명목실질실효화율(NEER)의 움직임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Bank of America(BoA)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NEER은 2025년 말 기준으로 1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원화 약세가 달러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유로, 엔, 위안 등 주요 통화 전반에 대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NEER의 하락은 한국의 구매력 감소를 의미하며, 이는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2.3. 과거 위기와의 비교 및 차이점
전 금융워원장이자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인 전광우는 현재의 상황이 1997년이나 2008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 1997/2008년: 시스템 리스크, 외화 유동성 부족, 은행 부실 등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붕괴 위기
- 2025년: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하지만, 민간 부문(가계 및 기업)의 자발적이고 구조적인 해외 투자 확대로 인해 달러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수급 불균형'이 원인
따라서 과거와 같은 고금리 처방이나 일시적인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현재의 환율 상승세를 꺾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3. 원화 가치 하락의 구조적 동인Ⅰ: '대순환(Great Rotation)'과 자본 유출
해외 금융사들이 2025년 원화 약세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무역수지가 아닌 '자본수지'의 변화다. 특히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매수 열풍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 환율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상수'가 되었다.
3.1.'서학개미'의 부상과 구조적 달러 수요
BoA는 2025년을 '포트폴리오 유출과 원화 약세의 해'로 규정했다. 이들은 한국 내 소매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매수가 환율 방어 기제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거대해졌다고 분석했다.
- 자본 유출의 규모: 2025년 한 해 동안 한국 개인 투자자들은 약 310억 달러(약 43조 원) 규모의 미국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는 2024년 매수 규모의 약 3배에 달하며, 2019년과 비교하면 12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이러한 자금 흐름은 9월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이는 원화 약세가 심화되는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 국내 시장 이탈: 불룸버그는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의 부진한 수익률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지쳐 "스케이프고트(Scapegoat)"가 되면서까지 미국 시장으로 탈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3.2. 국민연금(NPS)과 기관의 해외 투자 확대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큰손'인 국민연금(NPS)의 해외 투자 확대 기조 역시 원화 약세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전광우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가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단기적으로는 외환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요인임을 인정했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과 650억 달러 규모의 외환스와프를 2026년 말까지 연장하며 연기금을 외환 시장 안정화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4. 펀더멘털의 균열: 수출 경쟁력과 인구 구조
4.1. 수출 경쟁력 약화와 무역 구조의 변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였던 수출, 특히 대중국 수출의 부진과 경쟁력 약화는 원화 가치를 지탱하던 펀더멘털을 훼손시키고 있다.
- 중국발 공급 과잉: 철강, 석유화확 등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중국의 막대한 생산 능력 확대와 저가 공세에 밀려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 수출의 낙수효과 실종: 반도체 등 일부 첨단 산업의 수출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들이 생산 기지를 미국이나 동남아로 이전하면서 수출 대금이 국내로 환류되는 비용이 줄어들고 있다.
5. 정치적 지형의 변화: 계엄령 이후의 '이재명 노믹스'와 새로운 리스크
2025년 원화 약세의 배경에는 2024년 12월 계엄령 사태라는 거대한 정치적 충젹과 그 이후 등장한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 분석 기관들은 계엄령의 직접적인 충격은 해소되었으나,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새로운 정책 리스크가 원화 가치를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5.1. 계엄령 리스크의 재평가: '불확실성'에서 '비용'으로의 전이
CSIS와 같은 주요 싱크탱크와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한국의 '국가 리스크'를 재조명하게 만든 사건이었으나,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의 '정점'은 지났다고 평가한다.
- 정치적 안정 회복: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과 취임으로 리더십 공백이 해소되었으며, 이는 Fitch가 한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1.9%)하는 근거가 되었다.
- 리스크의 성격 변화: 계엄령이 남긴 유산은 이제 '정치적 혼란'이 아니라, 당시 위축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으로 전이되었다. 즉, 시장은 이제 쿠데타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해 풀린 유동성과 재정 적자를 우려하고 있다.
5.2. 이재명 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과 '재정 인플레이션' 우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 국민 소비 쿠폰' 지급 등 강력한 내수 부양책을 가동했다. 해외 언론은 이러한 '이재명 노믹스'가 경기 회복에는 기여하고 있으나, 원화 가치에는 양날의 검이 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 재정 확장과 물가 압력: 해외 분석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2026년 예산안은 전년 대비 8.1% 증가한 728조 원 규모로 편성되었으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유동성 공급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2026년 물가 2% 중반 옝상),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여력을 제한하고 있다.
- 채권 시장의 우려: 국채 발행 증가는 채권 금리 상승(가격 하락)을 유발하며,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채권 시장의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는 국가 신용도에 부담을 주어 원화 약세 압력을 가중시킨다.
5.3. '억만장자 포퓰리즘'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딜레마
이재명 정부는 상업 개정 등을 통해 소액 주주 권리를 강화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해외와 국내의 시각 차이가 환율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 JP Morgan의 낙관론: JP Morgan은 한국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지배구조 개혁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한국 증시를 '비중 확대'의견으로 제시하고 코스피가 5,000 포인트까지 갈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외국인 자금 유입을 유도하여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서학개미의 불신: 반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국내 시장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금투세' 논란이나 여전한 지배구조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미국 주식으로의 이탈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정부의 정책이 외국인에게는 호재로, 내국인에게는 불충분한 조치로 받아들여지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
5.4. 대미 통상 외교: '실요주의'의 성과와 한계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신속하게 협상하여 관세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 15% 상호 관세 합의: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는 대신,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관세를 15%로 제한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는 점에서 원화 가치 급락을 방어하는 재료로 작용했다.
- 투자 유출의 가속화: 그러나 합의 내용에 포함된 대규모 대미 투자는 결국 국내 기업들이 달러를 들고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ING 등은 이러한 구조적 달러 유출이 장기적으로 원화의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6.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 및 금융기관의 2026년 전망
해외 주요 금융기관들은 이재명 정부의 정책 효과와 글로벌 거시 경제 환경을 종합하여 2026년 원화 환율과 한국 경제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6.1. 구조적 약세론: Bank of America(BoA)
- 전망: 2025년 말 원-달러 환율 1,480원 육박, 2012년 이후 최저치 기록 예상
- 논리: 이재명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인 투자자들의 구조적 자본 유출을 막기 어렵다. 정부의 개입보다 자본 이탈 압력이 더 거세다.
6.2. 순환적 회복 및 밸류업 기대: JP Morgan
- 전망: 2026년 말 원-달러 환율 1,380원 수준 회뵉, 코스피 목표 5,000
- 논리: 이재명 정부의 상법 개정 등 지배구조 개혁이 외국인 자금을 불러올 것이다. AI 반도체 사이클과 맞물려 한국 자산의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6.3. 중립 및 신중론: Citi, ING
- Citi: 2026년 성장률 전망을 2.2%로 상향 조정, 수출 회복과 정부의 부양책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
- ING: 대미 통상 합의로 불확실성은 줄었으나, 대규모 대미 투자로 인한 달러 유출이 원화 강세를 제한할 것. 2026년 말 환율은 1,400원 수준에서 등락 할 것으로 예상
7. 2026년 거시경제 전망과 환율의 상관관계
7.1. 성장률 반등과 그 이면
국제통화기금(IMF)과 주요 IB들은 2026년 한국 경제가 1.8 ~ 2.2%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는 2025년의 부진(0.9% ~ 1.0%)에서 벗어나는 신호다.
- 이재명 효과: 정부의 소비 쿠폰 지급 등 내수 부양책이 민간 소비 회복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기적으로 성장률 수치를 높여 원화 가치를 지지하는 요인이 된다.
7.2. 인플레이션과 통화 정책의 딜레마
한국은행은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2026년 물가 상승률이 2%대 중반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금리 딜레마: 이재명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원할 수 있으나, 환율 방어와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고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섣불리 금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며, 이는 채권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8. 결론 및 시사점: '이재명 리스크'인가 '기회'인가
2025년 말 현재, 1,480원이라는 환율은 한국 경제가 겪은 정치적 격변과 그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반영하고 있다. 해외 시각에서 본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의 원화 가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 재정 건전성 vs 경기 부양: 확장 재정 정책이 경기 반등을 이끌어낼 것인가, 아니면 '쌍둥이 적자(재정+경상 적자)' 우려를 키워 원화 약세를 부채질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단기 부양 효과와 장기 재정 리스크가 공존하고 있다.
- 밸류업의 진정성: JP Morgan의 기대처럼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외국인 자금을 유인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만약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포퓰리즘적 규제로 변질된다면, 실망 매물이 쏟아지며 환율은 1,500원을 위협할 수 있다.
- 구조적 자본 유출: '서학개미'와 기업들의 대미 투자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다. 이를 상쇄할 만큼의 매력적인 국내 투자처를 만드는 것이 환율 안정의 근본 해법이다.
결론적으로, 계엄령이라는 급성 질환은 치유되었으나, 한국 경제는 '고비용ㆍ저성장'이라는 만성 질환과 싸우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 이 만성 질환을 치유할 체질 개선책이 될지, 아니면 진통제에 불과할지에 따라 2026년 원화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